- 멸종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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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의 장마는 유독 길었다. 당시 지역의 한 환경단체 활동가가 만든 메시지는 전사회적인 공감을 얻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국민국가체제의 경쟁적 산업화, 인간중심의 난개발로 상징되는 탄소자본주의의 결과물이다. 자본과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착취당한 생태계는 한계치에 도달했고 꾸준히 제기되던 전 지구적 감염병에 대한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의 모든 순간은 재난의 현장이다.

예견되었던 재난,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도 세계의 군사비지출은 2.6% 증가했으며, 자국중심주의와 경제력을 앞세운 강대국 정부들의 백신국가주의는 공공성에 대한 철학의 부재와 정부와 기업 중심의 시장주도적 재난대응이 초래하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간 정부-기업간 파트너십(PPP)은 공공성을 증대 하는 방식보다는 각각의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양극화에 기여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P4G는 녹색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그간 “녹색”을 도구로 활용해온 정부와 기업에 지친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은 P4G가 또 다른 “그린워싱(Green washing)”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예를 들어, P4G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 정부의 경우,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2030년 탈석탄을 실현할 방법을 신속히 마련해야 함에도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이러한 표리부동은 거버넌스의 핵심인 신뢰구축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들은 2021 P4G 기후정상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P4G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전한다 .

첫째, 공익성에 대한 우려다. P4G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주도적 솔루션을 표방한다. 하지만 오늘 날의 세계는 시장주도 성장은 공공성을 확장하는데 확실하게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의 실패에 대한 치밀한 성찰과 평가 없이 사회적 목적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 처한 재난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P4G의 접근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상업적 접근을 통한 공익의 증진이라는 P4G의 야심찬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상업적 해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이 공공적 이익 증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여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설계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례를 선정하고 기금을 투자하기 이전에 그 기금의 성격에 대한 판단과 기금 모금과 그 배분의 근거가 되는 공익성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대한 모든 파트너들의 동의를 얻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우려가 발생한다.

둘째, 공정성에 대한 우려다. 그 합의된 공공성 개념을 근거로 P4G가 지향하는 시장주도의 솔루션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각각의 프로젝트의 공익적 성격을 판단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확정되었어야 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을 때 공공기금 환수 등을 포함한 후속절차들 역시 합의되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P4G 논의에서는 그와 관련한 사항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례선정의 기준, 평가의 기준, 투자결정의 기준 등 공정하게 설계된 P4G 관련 기준이 부재하거나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데에서 세 번째 우려가 발생한다.

셋째, 공개성에 대한 우려다. P4G는 이러한 공공적 차원의 논의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채, 이미 50여개의 P4G 파트너십 사례들을 선정했고 기금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이 사례들이 식량·농업, 물, 에너지, 도시, 순환경제라는 5개 분야 중 하나에 준하며, 영리행위자와 비영리 행위자를 포함하고, 적어도 1개국 이상의 개발도상국이 수혜를 누려야 한다는 P4G 자체 선정기준 외에 구체적인 평가기준에 대한 정보 역시 공유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P4G의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서 네 번째 우려가 발생한다.

넷째, 시민성에 대한 우려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P4G는 비지니스 모델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이 국가(national)와 국제(global)차원의 행위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도록 구조화하고 있다. 따라서 P4G의 파트너십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이 행사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며 지역주민들이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대상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측면에서 P4G의 설계는 시장주도성을 강조하는 만큼 시민주도성(civil initiative)이 매우 낮고 시민참여의 공간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P4G는 탈 탄소에너지를 통한 녹색경제로의 가속화된 이행을 현재의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이라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의 여러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이행수단의 변화만으로는 기후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본다.

P4G는 경제성장의 속도를 둔화시키지 않으면서 직면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믿지만,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성장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구는 유한하고, 무한한 성장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한 해, 코로나로 전세계 GDP가 4.4% 하락하는 동안 군사비지출은 2.6% 증가했다. 전세계 군사비지출의 10%를 삭감하면 향후 10년간의 기후위기 대응에 소요될 비용이 충당될 수 있다. 공유지의 비극은 필연적이지 않다. 비극은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시장의 성장이 공익적 필요를 해결할 것이라는 접근은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를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러므로 관건은 공유지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는 P4G의 성공여부가 소수의 성공사례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P4G 그 자체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충돌하거나 교차하며 대안을 생성해내는 공론장이 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주도적 솔루션'이 아니라 사유와 공유, 기업과 정부, 소비자와 시민,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질적 존재들이 상호보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공공적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 P4G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매 2년마다 정상회의 시 시민사회포럼 등 풀뿌리 시민사회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화장을 공식화하라.
둘째, P4G에 참여하는 각 국 정부가 녹색전환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정책일관성을 가지도록 촉진하라.
셋째, P4G 파트너십 사업 선정 및 평가 시 해당 사업 당사자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라.
넷째, P4G 파트너십 사업 선정 및 평가 기준을 공개하라.

2021년 5월 14일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녹색 미래, 대전녹색당, (사)한국로하스협회, 세종지속가능발전협의회, 시시한연구소, 에너지나눔과평화, 에너지시민연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한국협회(SDSN-Korea), 피스모모,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공정무역협의회,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포럼, (사)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한국청소년세상, 한국환경교육네트워크, 환경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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